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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비, 클래식 뮤직 드라마 2회 리뷰 본문

온라인강의 리뷰

송사비, 클래식 뮤직 드라마 2회 리뷰

블레어 2024. 3. 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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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공공장소 음악의 아버지

 

2000년 대 2G 시대에 컬러링에 비발디의 '사계'라는 곡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비발디가 남긴 곡들은 영화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평소에도 바로크 시대 음악을 많이 듣고 평소 배우들에게도 클래식 CD를 선물한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비발디 곡들을 심심치않게 살펴볼 수 있다.

금자씨가 출소를 한 날 자신의 두부를 버리고 "너나 잘하세요."할 떄 나오는 곡이 비발디의 노래이다.

비발디는 9남매 중 장남이었다.

클래식 작곡가를 소개할 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꽤 많다.

비발디가 살았던 바로크 시대에는 피아노가 그다지 대중화되어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하프시코드가 통용되었고 교회에서는 오르간을 잘 사용했다.

비발디는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했다.

비발디의 아버지는 이발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비발디의 세 번째 직업이 진짜 직업이었는데 그의 본업은 성직자였다.

음악가로만 활동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부족해서 사제가 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지만 사제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연주 활동을 해왔고 신앙심 때문에 된 듯 보인다.

비발디에게 다작은 그다지 좋은 수식어가 아니었다.

새로 쓴 곡들이 전에 발표한 곡들과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자기 곡을 표절한 작곡가라는 평을 듣게된다.

성직자로 살았다고 하면 많은 이로부터 존경받았다고 떠올리기 쉽지만 비발디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했다.

빈으로 도망치듯 이주한 비발디는 쓸쓸한 시기를 보낸다.

직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었고 빈곤에 시달리다가 6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비발디가 장례를 치를 돈도 없어서 극빈자 장례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리뷰

 

비발디가 말년에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추방당해서 쓸쓸한 노년 생활을 했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되었다.

왕성환 활동을 해왔던 작곡가가 노년에는 빈곤해져서 장례 치를 돈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비발디의 아버지가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비발디가 그에 영향을 받아 바이올린 연주자로도 활동했고 현악기들을 잘 다룰 수 있었다는 성장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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